고려 말기는 원 간섭과 사회 불안, 왜구의 침입으로 나라가 크게 흔들린 시기였다. 그러나 이 혼란 속에서도 새로운 정치 질서를 모색하는 개혁이 시도되었다. 권문세족의 토지 독점과 불교의 타락, 농민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개혁이 추진되었다. 특히 신진 사대부가 성장하면서 개혁의 주체로 등장했고, 이는 결국 조선 건국으로 이어지는 기반이 되었다. 이 글에서는 고려 말 개혁 정치의 주요 내용과 한계를 살펴본다.
권문세족의 지배와 모순
고려 말 권문세족은 토지를 대거 장악하고, 과도한 수탈을 통해 사회 불안을 심화시켰다. 이들의 사치와 부패는 국가 재정 악화와 농민 몰락의 원인이 되었으며, 개혁의 필요성을 절실히 드러냈다.
개혁 세력의 등장
신진 사대부는 과거를 통해 성장한 새로운 지식인 집단으로, 권문세족과 대비되는 개혁 세력이었다. 이들은 유교적 정치 이념을 바탕으로 토지 제도 개혁과 불교 개혁을 주장했다. 이성계, 정도전 같은 인물은 단순한 개혁가를 넘어 새로운 왕조를 준비하는 핵심 세력이 되었다.
대표적 개혁 정책
개혁 분야 | 내용 | 의의 |
---|---|---|
토지 제도 | 전민변정도감 설치, 권문세족의 불법 토지 회수 | 농민 생활 안정 시도, 토지 제도의 공정성 강화 |
불교 개혁 | 승려의 특권 제한, 불교 세력 억제 | 유교적 정치 질서 확립 기반 마련 |
정치 개혁 | 신진 사대부의 정치 참여 확대 | 조선 건국으로 이어지는 권력 교체 |
개혁 정치의 한계
고려 말 개혁은 권문세족의 저항과 국제 정세의 혼란 속에서 한계를 보였다. 토지 개혁은 일부 성과를 거두었으나, 구조적 불평등을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다. 또한 불교 개혁 역시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기에는 부족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이후 조선 건국의 사상적·제도적 토대가 되었다.
결론: 개혁은 조선을 준비한 전환점이었다
고려 말 개혁 정치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붕괴해가던 사회를 새롭게 재편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였다. 신진 사대부의 개혁 의지는 권문세족 중심의 고려를 넘어,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의 출발을 준비했다. 따라서 고려 말 개혁 정치의 역사는 단순한 실패담이 아니라, 한국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