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해방은 한반도에 새로운 질서를 가져왔다. 그러나 해방은 곧바로 독립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국제 정세 속에서 한반도는 분단과 대립의 길로 접어들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구도, 유엔의 개입, 주변국과의 관계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글에서는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후의 국제 외교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미·소 군정과 한반도 분할
해방 직후 한반도는 38선을 기준으로 미군과 소련군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다. 이는 단순한 군사적 편의에서 출발했지만, 곧 냉전의 최전선으로 변했다. 미국은 남한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소련은 북한에서 사회주의 체제를 뿌리내리게 했다.
모스크바 3상 회의와 좌절
1945년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는 미·소 공동 위원회를 통해 한반도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찬탁·반탁 논쟁이 국내에서 격화되며, 미·소 공동위원회는 실패로 끝났다. 이는 분단 고착화의 출발점이었다.
유엔의 개입과 총선거
1947년 한반도 문제는 유엔으로 넘어갔다. 유엔은 남북 총선거를 통해 통일 정부를 수립하려 했지만, 소련이 이를 거부했다. 결국 유엔 한국 임시위원단은 남한에서만 총선거를 실시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후 국제 외교 정리
| 시기 | 사건 | 국제적 의미 |
|---|---|---|
| 1945년 | 미·소 군정 시작 | 한반도 분할 점령, 냉전 구도 반영 |
| 1945년 말 | 모스크바 3상 회의 | 신탁통치 결정, 국내 분열 심화 |
| 1947년 | 유엔으로 문제 이관 | 국제 사회가 한반도 문제 개입 |
| 1948년 | 대한민국 정부 수립 | 유엔 승인, 분단 국가 체제 고착화 |
국제 외교의 의의와 한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국제 사회의 승인 속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확보했다. 그러나 동시에 북한에 별도의 정권이 수립되면서, 한반도의 분단은 불가피해졌다. 이는 해방 후 독립이 외세의 이해관계 속에서 전개되었음을 보여준다.
결론: 정부 수립은 독립이자 분단의 시작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후의 국제 외교는 한국 현대사의 출발점이자, 분단사의 시작이었다. 국제 정세 속에서 한반도는 자주적 선택보다는 외세의 대립에 휘말렸고, 그 결과 분단 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따라서 정부 수립 전후의 국제 외교를 이해하는 것은 한국 현대사의 뿌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