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698~926)는 건국 초기부터 주변 강대국과의 외교 속에서 생존과 발전을 모색했다. 발해는 단순히 군사적 세력에 의존하지 않고, 적극적인 외교 전략을 펼쳐 국제 질서 속에서 독자적인 위상을 확보했다. 이 글에서는 발해의 대외 외교 전략과 그 의의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대당 외교
발해는 당나라와의 관계에서 균형을 잡으려 했다. 초기에는 신라와 연합하여 당과 대립하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사신을 파견해 조공 관계를 맺으며 실리 외교를 펼쳤다. 이를 통해 발해는 당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고 국제적 인정을 확보했다.
대일본 외교
발해는 일본과 활발한 외교 관계를 유지했다. 발해 사신은 일본에 30회 이상 파견되었으며, 일본은 발해를 독립된 문명국으로 대우했다. 발해는 일본에 모피, 인삼, 말 등을 수출하고, 일본으로부터는 철, 직물, 공예품을 수입했다. 이 과정에서 발해는 동아시아 해상 네트워크의 핵심 국가로 자리 잡았다.
대신라 관계
발해와 신라는 한반도 패권을 둘러싸고 경쟁했지만, 제한적인 교류도 있었다. 신라는 발해 사신의 통과를 막기도 했지만, 비공식적 교역은 지속되었다. 발해는 신라 견제를 통해 남쪽 국경을 안정시키고자 했다.
대거란 외교
발해는 북방 거란과도 외교 관계를 맺었다. 때로는 충돌했지만, 필요할 때는 외교적 협상을 통해 국경의 긴장을 완화했다. 이는 발해가 군사와 외교를 병행하는 전략을 취했음을 보여준다.
발해 외교 전략 정리
| 외교 대상 | 특징 | 의의 |
|---|---|---|
| 당나라 | 사신 파견, 조공 관계 | 국제적 인정, 선진 문물 수용 |
| 일본 | 사신 교류 30회 이상 | 해상 교역 확대, 문화 전파 |
| 신라 | 경쟁 관계, 제한적 교류 | 한반도 정치적 균형 |
| 거란 | 외교와 충돌 병행 | 북방 국경 안정 모색 |
외교 전략의 의의
발해의 외교는 단순한 생존 수단이 아니라, 독자적 국가 위상을 국제 사회에 알리는 과정이었다. 당과 일본은 발해를 고구려 계승국이자 독립 문명국으로 인정했고, 이를 통해 발해는 "해동성국"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결론: 발해 외교는 동아시아 속의 자주성 선언이었다
발해의 외교 전략은 군사력만으로는 불안정했던 국제 질서 속에서 국가 생존을 보장하는 핵심 수단이었다. 외교를 통해 발해는 동아시아에서 중요한 문화·경제 네트워크의 주체로 자리매김했다. 따라서 발해의 외교는 단순한 외교 기록이 아니라, 독립적 문명국으로서의 자주성 선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