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언어보다 더 빠르게 감정을 자극하고, 정체성을 각인시킬 수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학교에서는 일본식 군가, 천황 찬양가, 일본어 노래가 음악 교과서에 실렸다. 그러나 일부 음악 교사들은 그에 순응하지 않았다. 이들은 교실 안에서 몰래 우리 민요를 가르치거나, 조선의 정서를 담은 금지곡을 연주했다. 당시엔 단지 '노래 수업'이었지만, 그것은 분명한 항일 저항이었다. 이 글에서는 일제강점기 음악 교사들의 실천, 그들이 선택한 곡, 수업 방식, 그리고 금지된 선율이 남긴 영향에 대해 살펴본다.
일제가 통제한 학교 음악의 현실
1930년대 이후 일본은 조선 음악 교육을 본격적으로 통제했다. 교과서에는 일본 민요와 군가가 포함되었고, 조선의 고유 민요나 향토음악은 퇴출되었다. 음악 교사들은 매 수업마다 일본 제국의 정서를 학생들에게 주입하도록 요구받았다. 특히 '기미가요'를 학생 전체가 제창하게 하거나,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도록 강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저항의 방식 – 교실 안의 작은 전쟁
이러한 억압 속에서 일부 교사들은 저항을 시도했다. 예를 들어 전주 지역의 모 음악 교사는 학생들에게 '아리랑'을 연습시켰고, 이를 수업 발표회에서 편곡된 일본곡인 것처럼 위장해 연주했다. 또 다른 교사는 한글로 된 가사를 몰래 배부하며, 학생들이 감정을 실어 부르게 했다. 이는 단순한 예술 활동이 아니라, 문화 정체성을 지키는 실천이었다.
음악 교사 항일 저항 사례 비교표
| 항목 | 사례 1 | 사례 2 | 사례 3 |
|---|---|---|---|
| 지역 | 전주 | 진주 | 서울 |
| 저항 방식 | ‘아리랑’ 위장 연주 | 한글 가사 배포 | 수업 중 민요 교육 |
| 위험 요소 | 검열 대상 곡 사용 | 비밀문서 배포 혐의 | 조선 민요 금지 위반 |
| 결과 | 징계 후 전근 | 일시 구금 | 감시 대상 등록 |
왜 음악으로 저항했는가?
음악은 검열을 피해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학생들은 노래 가사 속에 숨겨진 뜻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였고, 멜로디를 통해 조국에 대한 감정을 간직했다. 말로 저항할 수 없는 시대에, 음악은 가장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무기였다. 또한 교사들은 이를 통해 학생들에게 ‘정체성’이라는 씨앗을 심을 수 있었다.
현대 교육에 주는 시사점
이들의 활동은 지금의 예술 교육에도 중요한 의미를 던진다. 단지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감정과 가치, 문화 정체성을 전하는 일이 예술 수업의 본질이라는 점이다. 당시 교사들은 예술을 통해 민족을 지켰고, 학생들은 그것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았다. 예술이 사라진 교육은 결국 기억을 잃은 사회가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결론
일제강점기 음악 교사들은 총도 펜도 들지 않았다. 그들은 노래로 저항했고, 가르침으로 감정을 전했다. 교과서에는 없는 곡을 가르쳤고, 학교 방송을 틀면서 민족 정서를 울려 퍼지게 했다. 이러한 행동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민요, 우리가 듣는 가락 속에는 그들의 수업이 녹아 있다. 금지곡을 가르친 교사는, 침묵 속의 독립운동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