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은 조선을 철저히 통제하기 위해 언론을 조직적으로 장악하고 통제하였다. 언론은 대중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일 뿐 아니라,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확산시키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이에 따라 총독부는 언론사 설립을 허가제로 제한했고, 기사 내용에 대해 검열과 삭제를 일삼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은 민족정신을 지키고자 검열을 피해가며 우회적으로 저항의 목소리를 냈다. 이 글에서는 일제가 언론을 어떻게 통제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도 어떻게 저항 언론이 존재할 수 있었는지를 구체적 사례와 함께 분석한다.
1. 언론 통제의 제도적 기반
일제는 1907년 '신문지법'을 도입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강력히 억압하기 시작했다. 이 법에 따라 신문 발행에는 총독부의 사전 허가가 필요했고, 발행 후에도 언제든지 정간 또는 폐간이 가능했다. 또한 기사 내용 중 '치안 방해', '황실 비판', '독립운동 언급' 등이 포함될 경우 즉각 삭제되거나 해당 언론은 처벌받았다. 일본은 이 제도를 통해 민족주의적 발언이나 조직적 저항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했다.
2. 주요 언론 검열 방식
검열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이루어졌다. 첫째, 사전 검열로 기사 발행 전에 총독부 검열관이 내용을 확인하였다. 둘째, 사후 제재로 이미 발행된 기사에 대해 법적 처벌을 가했다. 셋째, 언론사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를 통해 내부 정보원까지 동원하여 사상을 통제했다. 또한 조선 내 학교와 민간단체에는 '출판물 감시 명단'이 배포되어, 특정 단어조차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되었다.
3. 검열을 피한 우회적 저항 언론의 전략
일부 언론은 검열을 우회하기 위해 비유, 우화, 역사적 인용을 활용하였다. 예를 들어, 독립운동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조선왕조의 충신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저항 의식을 전파했다. 시사만평, 문학 기고, 외부 서신 형태로 위장된 칼럼 등도 많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독자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해석되며 저항의식 고취에 기여했다.
4. 대표적인 저항 언론 사례
대표적으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일제강점기 동안 민족주의 언론의 대표주자로 기능했다. 조선일보는 민속 문화 보존과 농촌 계몽운동을 중심으로 민족 정체성을 강조했고, 동아일보는 스포츠 및 청년 운동을 통해 사회 의식을 고양시켰다. 특히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가슴에 단 채로 금메달을 땄을 때, 동아일보는 사진에서 일장기를 삭제했다는 이유로 정간 처분을 받았다. 이는 상징적인 저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언론 통제 수단과 저항 사례 비교
| 통제 방식 | 설명 | 저항 사례 |
|---|---|---|
| 신문지법 | 발행 허가제, 기사 삭제, 폐간 가능 | 동아일보 정간(손기정 사건) |
| 사전·사후 검열 | 검열관이 기사 내용 사전 확인, 법적 제재 | 우회적 표현으로 독립 의식 전달 |
| 언론사 감시 | 내부 정보원, 출판물 감시 명단 운영 | 독립운동 은유 표현 사용 |
맺음말
일제강점기의 언론 통제는 단순한 정보 제한이 아니라, 조선 민족의 정체성과 의식을 지우기 위한 본질적인 지배 전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언론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의 목소리를 이어갔고, 민족주의를 전파하려 노력했다. 이들의 지혜와 용기는 오늘날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독립성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 언론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교훈을 제시한다.
